간만에 가슴 찡한 영화를 봤다. 부자 지간의 정. 마지막에 아들이 아버지의 소박한 꿈을 이뤄드리는 장면에서 울컥하더라.

8/13/14

—————————————————————————-

추천영화: 네브라스카 (1백만불 당첨금 찾으러 가는 길) by Buenos Aires

광고 전단에 불과한 1백만불 당첨복권을 들고 당첨금을 찾으러 가겠다고 나서는 한 노인과 그 가족을 그린 영화다.  이 영화는 붕괴되고 있는 현재가정에서 쓸모없는 가족일원으로 취급받고 있는 노인들도 소박하나마 꿈이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영화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아버지의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나름 묵묵히 일을 했더니 종국에는 자식들에게 고집스럽고 말이 안 통하는 늙은이로 기억되는 것이다. 작년 칸영화제와 올해 오스카 상 경쟁 부문에 올랐던 알렉산더 페인(52·사진) 감독의 ‘네브라스카’는 이런 아버지 세대에 대한 강력하고도 아름다운 찬가를 보낸다.

5bc586c7c028485836f05e44367239d0

이 영화는 독립영화제 출품작처럼 저예산 영화이지만 칸 영화제에서 금상(Palma d’Or)과 함께 주연배우상을 수상하고 American Film Institute에 의해 금년의 Best Top 10에 선정되었으며 National Board of Review에서도 Best Top 10과 남자 주연상과 조연상의 명예를 차지했다.
몬태나주에 사는 고집불통의 알콜중독자 우디 그랜트(브루스 던)는 쫓아다니면서 바가지를 긁어대는 아내 케이트(준 스큅)와 두 아들 로스와 데이빗(윌 포르테)과 함께 살고 있다. 그는 이 노망기가 든 게 아닌가 하고 염려할 정도로 건망증이 심하다. 그런데 이런 우디가 100만달러 경품에 당선됐다는 쪽지를 받고 이 돈을 받으려고 네브래스카주의 링컨까지 가겠다고 우기면서 집안이 사건이 시작된다.
식구 중 아무도 자기말에 귀를 귀울이지 않자 링컨까지 800마일을 걸어가겠다며 자동차들이 질주하는 고속도로를 따라 휘청휘청 걷기 시작한다. 그러나 고속도로 순찰경찰은 위험하다며 그 노인을 집으로 데려다 주고만다. 가족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우디는 다시 떠나겠다고 선언한다.
자녀들이 우디가 당첨됐다고 우기는 것은 광고를 위한 정크복권이라고 아무리 이야기하여도 이 노인은 자신이 직접 확인한다는 것이다. 지금이라면 누구나 한 두번 쯤은 받아보고 쓰레기 통에 집어던졌을 그런 정크메일에 노인은 혹한것이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에게 악다구니를 쓰고, 형은 치매기가 도졌다고 요양원에 보내자고 주장한다. 틈만 나면 집에서 빠져나와 네브라스카로 하염없이 걸어가는 아버지를 보다 못한 둘째 아들 데이빗(윌 포르테)이 그를 네브라스카에 모시고 가기로 한다. 그도 막 동거녀로부터 버림을 받아 당분간 머리를 식힐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를 데리고 여행하기로 마음을 정한 것이다.

nebraska-movie-photo-25

 

가족이 사는 몬태나주 빌링스에서 네브라스카 링컨으로 가는 길에 아버지가 태어나 자란 네브라스카 호손을 들러 아버지의 여섯 형제와 마을 사람들을 만나 말없이 매일 술만 마셨던 아버지의 과거를 알게 된다.
비밀이라 해도 그리 큰 비밀도 아니다. 아버지는 한국전쟁에 참전한 뒤 말수가 적어지며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진짜 사랑’을 만나 잠깐 외도를 했지만 어머니를 떠나지 않았다. 또한 다른 사람들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언제나 손해만 보고 살았다는 것이 아버지의 비밀이었다.
이 영화는 후회막급한 삶을 살았고 효용가치를 상실한 노인의 터무니없는 꿈을 찾는 얘기요, 조락해 가는 미 서부 시골에 바치는 송가이자, 부자지간의 연결의 재시도를 그린 향수감 가득한 코미디 터치의 흑백 드라마요 로드 무비다.
때는 현재이나 마치 과거를 그린 듯이 지나간 것에 대한 동경과 회환, 그리고 슬픔과 사랑이 가득히 고여 있다. 성격에 결함이 많은 노인과 착한 아들이 함께 차를 타고가면서 나누는 정과 이들이 만나는 여러 사람들이 엮는 지극히 인간적이요 괴팍하고 우스운 에피소드들이 깨소금 맛나게 아기자기 하고 재미있다.
영화 도중에 고속도로 갓길에 차를 세우고 부자가 나란히 서서 오줌을 누는 장면이 두번이나 나온다. 알렉산더 페인 감독은 사람이 사는 모습을 이렇게 빼놓지않고 화면에 담고 있다.
미국의 중서부, 그 중 네브라스카 주는 가장 평범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주로 촌스럽고 순진하거나 보수적인 ‘시골 사람’으로 많이 그려진다. 이미 경제적으로 쇠락한 이곳은 황량하다. 마을에는 노약자만 남았고, 몇 안 되는 젊은이들도 할 일이 없다. 이들은 거실에 모여 앉아 무표정하게 TV를 보거나 맥주를 마신다. 오래전 마을을 떠난 우디가 100만달러 상금에 당첨됐다는 소문이 돌자 마을 사람들은 그를 영웅시한다.

qqqq

여기서 우디는 동네 신문의 뉴스거리가 되고 자신의 일가친척과 옛 사업 파트너(스테이시 키치) 등을 만나면서 옛날 얘기가 쏟아져 나온다. 그런데 이 동네서 만난 사람들도 모두 우디의 꿈을 함께 원하고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우디를 열렬히 응원한다.
그리고 우디의 아내인 케이트와 큰 아들인 로스가 여기까지 내려오면서 동네 사람들과 지지고 볶는 온갖 에피소드가 만발한다. 우디와 데이빗이 우디가 태어난 폐가를 방문하는 장면과 데이빗과 우디의 옛 애인(앤젤라 맥이완)과의 만남, 그리고 케이트의 동네 가족묘지 방문 장면 등이 우습기도 하고 눈시울을 물들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영화는 결코 싸구려 감상에 빠지지 않는다.
일가친척이 떼를 지어 리빙룸에 앉아 무표정한 얼굴로 TV를 보면서 단조롭게 별 의미 없는 말을 시치미 뚝 떼고 내뱉는 장면들이 배꼽 빠지게 웃긴다.
쓸데없는 대화 중에는 ‘기아’가 한국산 자동차였다는 것을 몰랐다라는 대화도 나온다.
우디 역으로 올 칸영화제서 남자 주연상을 받은 베테랑 배우, 던의 약 먹은 듯이 어지럽고 피곤해 보이면서도 강단 있는 연기가 훌륭하고 포르테와 스큅과 키치 등의 연기도 빼어나다. 나른하게 지나간 것을 그리워하게 만드는 진실된 감정이 흐르는 영화다.
가장 평범한 사람들의 언어에서 유머를 이끌어내는 재주가 있는 페인 감독은 시골 사람들을 이용해 뒤틀린 유머를 선보인다. 뚱뚱하고 백발이 성성한 어머니가 걸핏하면 “마을 남자들이 다 나와 키스하기를 원했다”고 가족들에게 자랑하고 우디의 아들들이 아버지가 빌려줬다고 생각하는 공기 압축기를 훔치는 장면에선 웃지않을 사람이 없을 정도다. 그리고 그 웃음은 시골 사람들에 대한 비웃음과 조롱보다 애정과 애잔함에 더 가까웠다.

47f94dfb1839a580760f2c121d86fd82

영화는 흑백으로 촬영됐다. 미국 중서부의 스산함을 강조하기 위해 쓰인 이 방법은 오히려 볼거리 하나 없는 이곳의 아름다운 속살을 보여준다. 이파리 하나 없이 앙상하게 마른 나무와 텅 빈 도로는 마치 에칭이라도 한 것처럼 스크린에 새겨진다. 페인 감독은 볼 것 없는 시골 정경을 흑백으로 찍어 그 영상이 오히려 윤기가 나도록 아름답다.
실상을 능가하는 아름다운 총천연색 영화가 나온지 반 백년이 지나 화면의 색깔을 자유자재로 바꾸는 디지털 카메라 시대에 흑백영화를 만들어진 것이다.
여기에 흰머리를 나부끼며 복권 당첨금을 타러 간다며 고속도로를 어기적 어기적 걸어 다니는 브루스 던의 탁월한 연기까지 더해져 ‘네브라스카’란 제목이 부끄럽지 않을 영화가 만들어졌다.
‘사이드웨이즈’와 ‘디센단츠’를 만든 알렉산더 페인감독이 실제 자신의 고향인 네브래스카에 돌아가 만든 일종의 귀거래사로 희망도 장래도 없는 보통 사람들을 연민의 정이 가득한 마음으로 돌보고 있다.
우디가 찾고자하는 것은 현금 100만달러라기보다 그의 삶의 마지막 가치라고 하겠다. 우디는 1백만불이 생기면 공기압축기와 픽업을 사는 것이 꿈이다. 그러나 우디는 운전면허증도 없다.
복권이 휴지조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된 아버지가 망연자실하자 아들은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가 중고자동차 가게에서 그토록 몰고 싶어하는 픽업을 구입해서 운전 면허증도 없는 아버지에게 선물한다. 아버지는 그가 어린시절을 보냈던 네브라스카의 호손의 마을사람들과 친척들이 보는 앞에서 뻐기는 모습으로 천천히 픽업을 몰고 지나간다. 바로 이것이 아버지의 그토록 바라던 꿈이었던 것이다.

0014

 

이 영화는 늙은 아버지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가족사를 통해서 현대문화 가운데서는 찾아볼 수 없는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 작품의 백미는 붕괴되어가는 가정에서 사는 현대인들에게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새롭게 음미하도록 유도하면서 죽음을 앞둔 노인들의 소박한 꿈이 무엇인가를 다시 묻게 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