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도 통역이 되나요?(Lost in Translation)’.

영화 ‘대부’ 감독인 프란시스 코폴라의 딸 소피아 코폴라가 연출해 화제가 됐던,

평단과 대중으로부터 두루두루 좋은 평을 받았던 영화다.

원어 제목을 요상하게 바꾼 탓에, 우리말 제목이 엉터리다.

우리말 제목만 들으면 마치

말이 통하지 않는 두 남녀가 국경의 장벽을 뛰어넘는 사랑을 갈구하는 영화라고 예상하게 되지만,

그런 영화는 아니다.

단절된 인간관계에 상처받은 두 미국인 남녀가

도쿄에서 우연히 만나 ‘소통’하게 되는 과정을 담은 영화일 뿐이다.

(소통하는 과정에서 인간적인 교감을 나눈 것이 굳이 ‘사랑’이라 한다면 할 말은 없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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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이 영화엔, 각자의 개성이 뚜렷한 두 배우가 출연한다.

빌 머레이와 스칼렛 요한슨.

나이 차가 꽤 나는 두 배우지만, 묘하게 어울린다.

위스키 광고 촬영 차 일본에 온 ‘한물간 배우’ 밥 해리스(빌 머레이).

미국에서 그는 ‘소외 받는 가장’이자 ‘퇴출 직전의 쓸쓸한 중년’이다.

일본에서도 그는 철저히 혼자인데,,

그의 말을 알아듣는 이도, 그와 소통하려는 이도 부재하기 때문이다.

낯선 도시 속에서 느끼는 고독은 그를 더 지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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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 다섯 샬롯(스칼렛 요한슨) 역시 외롭긴 마찬가지다.

사진작가인 남편을 따라 도쿄에 왔지만,

일 중독 남편 탓에 그녀는 외로움에 중독되기 직전이다.

철학을 전공했기에 생각도 많고 하고픈 이야기도 많지만

누구와도 ‘사유의 즐거움’을 나눌 순 없다.

이리저리 떠돌며 도쿄의 인파에 휩쓸려봐도, 군중 속에 그녀는 혼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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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 단절된 관계에 질릴대로 질린 두 사람.

이들은 우연히 마주치고, 대화를 시작하며, 함께 도쿄를 누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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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 나이도 다른 두 사람이지만

‘소통’을 그리워했다는 점에선 공통점을 지녔다.

그럼에도,

처음 마주한 오십대 남자와 이십대 여자는 ‘통역 불가 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다.

말도 통하지 않는 공간(도쿄)에서 같은 말을 쓰는 두 사람이지만

소통의 시작은 늘 서먹하게 마련이니까.

두 사람의 관계는 점차 가까워지지만,

둘 사이의 직접적인 감정 표현은 전무하다.

실지로 이 영화엔 대사가 별로 없다.

진정한 소통엔 굳이 ‘말’이 필요치 않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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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그저,

서로의 표정과 행동에서 상대가 품어 온 고독감을 읽어낸다.

도쿄의 가라오케, 오락실, 일식집처럼 낯선 공간에서

둘은 서로에게 익숙한 ‘외로움’이란 감정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샬롯의 선명하지 않은 미소에서,

밥의 냉소적인 유머에서,

둘은 어느새 서로의 닮음에 익숙해진다.

그간 휴대폰을 매개로 대화하고, 팩스로 뜻을 전하며, 사랑에 있어서도 육체적 관계만 맺는 등

자신을 둘러싼 모든 이들로부터 단절감을 느껴왔던 두 사람은

서로를 가만히 응시하는 것으로 문자를 대체하며,

쪽지를 방안에 넣으며 마음을 전하고,

거리를 둔 채 침대에 누워 몸이 아닌 마음을 섞는 ‘진정한 소통’을 나눈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도,

둘은 서로가 왜 힘들어하는지 묻진 않는다.

다만 마지막 장면에서,

둘 사이에 뭔가 통한 것이 있음을 직감적으로 알게 된다.

도쿄를 떠나던 밥이 자동차 안에서 거리의 샬롯을 발견하고,

그녀에게 달려가 무언의 대화를 나눈 뒤 미소짓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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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그렇게,

언어 이면에 숨겨진 소통의 본질을 건드린다.

다 보여주진 않지만, 그 본질에 관해 생각해 볼 여지를 둔다.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소통할 수 있는 대상을 찾고 있는 내겐

퍽 와닿는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