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우, 장비의 충성도 유비가 그들을 알아주었기 때문이 아닐런지……

“여자는 자기를 사랑해 주는 남자를 위해 화장을 하고, 남자는 자기를 알아주는 이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 라는 말이 있다.

이 알려진 管鮑之交도 위와 관련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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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管鮑之交란…….사마천(司馬遷)은 그의 불후의 명저 《사기(史記)》의 <관안열전(管晏列傳)> 에서 관중과 포숙의 우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관중(管仲)은 영수(穎水) 근처에서 태어났다. 포숙(鮑叔)과는 어렸을 때부터 사귄 친구로 언제나 사업을 같이 했다. 포숙은 일찌감치 관중의 재능을 알아보았다. 관중이 가난한 집안 형편 탓에 늘 포숙을 속여 먹어도 포숙은 싫은 기색 하나 없이 우정을 지켜 나갔다. 그후 포숙은 제나라 공자 소백(小白)을 모셨고, 관중은 공자 규를 섬겼는데, 결국 소백이 환공(桓公)으로 군주의 자리에 오르자, 규는 자살하고 관중은 붙들린 몸이 되었다. 포숙이 관중을 천거했다. 관중에게 제나라의 실권을 맡김으로써 제환공은 천하의 패자로 군림하게 되었다. 아홉번이나 제후들과 동맹하여 천하의 안정을 이룩한 것은 바로 관중의 경륜이었다. 관중은 후일 이렇게 말했다. “내가 처음 곤궁하여 포숙과 함께 장사를 할 때, 이익금을 내가 훨씬 많이 챙겼어도 그는 나를 욕심많은 놈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 집이 가난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군주에게 세번 등용되었다가 세번 다 쫓겨났어도 그는 나를 못난 놈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아직 제대로 때를 만나지 못한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내가 전쟁에 나갔다가 매번 도망쳤어도 그는 나를 비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내게는 늙은 노모가 계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공자 규가 왕위쟁탈전에 지고 같이 모시던 소홀(召忽)이 죽었는데도 나는 포로로 붙들려 욕되게 목숨을 이어가는데도 그는 나를 부끄러움을 모르는 놈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작은 절개에 연연해하지 않고 천하를 안정시키고자 하는 포부가 워낙 컸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를 낳아준 것은 부모이지만 나를 알아준 것은 포숙이었다.[생아자(生我者), 부모(父母). 지아자(知我者), 포숙(鮑叔)]

사마천은 다음과 같은 결미를 잊지 않았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관중의 뛰어난 재능과 경륜보다도 포숙의 사람 알아보는 혜안을 더 높이 쳤다.

관중은 그 뛰어난 경륜과 능력으로 제나라로 하여금 천하를 호령하게 했지만 그 뒷면에 그를 알아준 포숙이 없었다면 그는 영원히 역사의 뒤안길에서 이름없이 사라졌을 것입니다. 자기보다 뛰어난 사람에 대한 시기와 질투가 널려 있는 세상에서 평생을 친구를 믿고 자신보다 더 나은 자리에 세워준 것은 참으로 드물고 희귀하며, 또한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이를 후세 사람들은 ‘관중과 포숙의 우정’즉 ‘관포지교(管鮑之交)’라고 불러 영원한 우정의 모범으로 삼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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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사랑받는 것을 원하는 것만큼이나 남자는 누군가가 자신의 능력을 알아주는것을 원한다.

그리고 사랑하는 이를 위해 모든것을 주는 여자처럼 남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이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것조차 마다하지 않는다.

때로는 이런 남자들의 생각때문인지 여자가 당신을 사랑한다 말하는것 보다 당신이 필요하다라고 말하는 것이 더 기쁘게 느껴지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