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잊고 있었던 사진을 문득 메모리칩에서 꺼내 모니터에 띄워볼 때면 이상한 감정에 휩싸인다. 사진을 찍던 그 순간의 감상은 사라진 지 오래, 이젠 ‘오늘’의 눈으로 사진을 새롭게 해석하게 되기 때문이다.

사랑은 사진과 닮아 있다. 만나고 사랑하고, 아파서 헤어지는 그 일련의 과정들은 사진을 찍던 날의 단순한 열정일 뿐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과거를 추억이란 채색으로 불러낼 때, 사랑은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철학적인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지난날 서로 주고받았던 행동이나 말이 그때의 과잉된 감정 때문에 다른 뜻으로 전혀 이해했거나 전달됐던 건 아닌가 의심해 보자는 것이다.

달콤했던 연애 초기를 넘기면 싸움도 늘어난다. 소소한 것들에 핏대를 세우며 죽기 살기로 싸웠던 것 같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열정의 과잉?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사랑하기 때문에 싸운다’라는 문장 안엔 함정이 숨어 있다. 싸움마저도 사랑 때문에 했다는 면죄부를 발부하고 싶어 하지만 더 깊은 곳엔 두려움과 치졸함, 그리고 이해 부족이 있음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은 누구나 가장 행복한 순간에 가장 슬프다. 가장 행복한 순간은 결국 ‘정점’이니까. 정점 뒤엔 내리막길뿐. 그 불안감 속에서 신경은 바늘처럼 곤두서 상대의 사소한 행동에도 무리한 해석을 가하고, 비난을 퍼붓는다.

사랑은 때때로 너무도 잔인하다. 사진은 그 사진이 걸린 장소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는 이야기처럼, 사랑은 그 사랑을 쳐다보는 장소와 시기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전달하는 변덕쟁이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남녀가 사랑에 빠진다. 두 사람은 한데 표현 방식엔 차이가 있다. 남자는 다정하고 자상한 성격의 소유자다. 하지만 여자는 전화나 문자를 자주 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사랑은 드러내는 것이라 생각한 남자는 결국 이별을 통보했다. 그리고 다른 여성을 만났다. 남자는 훗날 조심스럽게 말했다. 현재 만나는 여자는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걸어온다고. 처음엔 그게 관심이라고 생각했지만, 바쁜 시간 계속되는 전화에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고. 그때야 비로소 예전 여자 친구가 들려준, ‘배려’라는 단어가 이해되기 시작했다고. 하지만 어쩌면, 현재의 여자 친구와 헤어지면, 그 남자는 똑같은 후회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 복잡한 사랑에 한 가지 정의를 내리는 우둔한 짓은 하지 않겠다. ‘지나간 사랑은 언제나 아름답다’는 뻔한 문장도 반복하고 싶진 않다. 단지 중요한 건 지금 알고 있다고 생각한 일들이 나중에 다른 의미로 해석될 수 있음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열정에 휩싸인 채, 혹은 이별의 두려움 때문에, 지금의 독해는 언제나 오독의 여지를 남겨놓고 있음을 기억하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