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의사’ 김학윤
“뛰면 무릎 닳는다는 건 근거 없는 얘기… 주사 필요 없어요 걷고 뛰는 게 약입니다”

서울 광진구 자양동의 한 정형외과 대기실. 왼쪽 다리에 깁스붕대를 한 중년 여성이 간신히 몸을 의자에 기대고 있었다. 잠시 후 등에 업혀 진료실로 들어간 그가 10분 뒤 뻣뻣이 서서 걸어나왔다.

깁스붕대는 간데없고 부축받으며 한 걸음씩 뗐다. 그를 보고 누군가 외쳤다. “그렇게 조금씩이라도 걸어야 해요. 주사 필요 없어요. 걷고 뛰는 게 약입니다. 두려움을 떨쳐요.” ‘달리는 의사’ 김학윤(金學倫·51)이었다.
달리기 부적합 체질?

김학윤은 어린 시절 내내 달렸다 하면 늘 꼴찌였다. 중·고교 진학 후에도 상황은 같았다. 체육시간 ‘선착순’ 기합 때에는 미칠 지경이었다고 했다. 그는 항상 끝까지 남는 자였다.

체력장 오래달리기 종목도 기를 써봐야 남들보다 30초 이상 늦었다. 달리기가 왜 그렇게 힘들었을까. 1978년 고려대 의대에 입학한 후 이유를 알게 됐다. 그는 선천적으로 발목이 바깥쪽으로 틀어져 있다.

오른쪽 발목은 각도가 25도나 된다. 바깥쪽 복사뼈도 남달리 크고 평발이다. 김학윤은 “정형외과 전문의로서 지금 봐도 달리기 부적합 체질”이라고 말했다. 가뜩이나 싫어하던 달리기를 완전히 ‘퇴출’시킬 명분이 생겼다. 이후 그는 20여년 동안 ‘달리기’를 삶에서 내쫓았다. 군의관으로 입대해서도 구보(驅步) 한 번 하지 않았다. 그는 “훈육대장이 왜 열외하느냐고 하면 발목을 보여주며 ‘불안정 발목이라 뛰면 큰일 난다’고 했다”고 했다.

정형외과 전문의의 말에 누구도 토를 달지 않았다. 전역 후 대학병원, 종합병원에 근무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걷는 것조차 귀찮아졌다. 버스 한 정거장도 택시로 갔고 출퇴근 시간엔 아내가 차로 그를 날랐다.

달리기 전도사로 변신

2000년이 그에겐 특별한 해다. 의약분업 논란 때문에 골치를 앓던 그는 머리도 식힐 겸 동료들과 북한산에 갔다. 그는 만만하게 생각했지만 힘겨운 등산을 했다. 10년 선배가 쏜살같이 앞질러 올라갈 땐 자존심마저 상했다.

날렵하게 오르던 선배 의사가 마라톤을 한다는 얘기를 듣고 처음으로 ‘나도 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위에 “이제부터 달리겠다”고 알린 후 점심시간마다 인근 초등학교 운동장을 뛰었다.

처음엔 구두 신고 뛰다가 등산화로 바꿔 신고 석달간 달려봤다. 거리가 5㎞, 10㎞로 점점 늘었다. 이듬해 3월 하프 마라톤 대회에 출전한 그는 10월 처음 도전한 풀코스 대회인 조선일보 춘천마라톤에서 4시간22분25초로 완주했다.

증오의 대상이 반대의 의미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그해 11개의 풀코스와 하프코스에 참가한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참가한 대회가 122회다. 총 길이로 따지면 7743㎞쯤 된다.

이 가운데 63㎞ 이상 울트라 마라톤대회 참여횟수는 45번이다. 이런 흔적은 병원 곳곳에 있다. 입구 한쪽 책꽂이엔 달리기 잡지가 비치돼 있고 대기실과 진료실 벽엔 2008년 ‘대한민국 24시간 달리기’ 대회 참가사진이 걸려 있다.

진료실 앞엔 최근 참가한 기록증, 대기실 한쪽 벽엔 각종 대회 완주패가 놓여있다. 진료실 컴퓨터 모니터 바탕 화면은 2008년 ‘IAU 24시간 월드챌린지 서울대회’ 사진으로 돼 있다.

달리면 무릎 상한다?

달리기를 하기 전엔 그도 여느 의사처럼 “되도록 뛰지 말고 무릎을 보호하라”고 권했다고 한다. 하지만 달리기를 거듭해 직접 체험하면서 적절한 처방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는 “심한 경우를 제외하곤 걷고 달리면서 무릎 근육을 강화해야 회복도 빠르고 예방효과도 크다”고 말했다. 괜히 뛰다가 잘못 될까 봐 두려워 무조건 뛰지 말라고 한다는 것이다. 김학윤은 “뛰면 무릎 닳는다는 건 근거 없는 얘기이며 평생 써도 괜찮은 무릎을 괜히 아낀다면 오히려 다른 건강을 더 해치게 된다”고 했다. 김학윤은 달리기를 시작한 이래 1~2년마다 한 번씩 자기 무릎 엑스레이를 찍는다.

‘뛰면 무릎 상한다’는 얘기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그는 “한 달 평균 250㎞ 이상을 십년 가까이 뛰었는데 무릎 연골의 변화가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2003년부터 100㎞ 울트라 마라톤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울트라 마라톤을 하다 다친 환자 치료를 위해 공부 삼아 시작했다. 2004년에는 강화도~강릉까지 한반도 횡단 311㎞를 64시간29분에 완주했고 2006년에는 제주도 200㎞ 대회에 나가는 등 울트라 마라톤에 폭 빠졌다. 잠도 쫓으며 쉬지 않고 달리는 ’24시간 달리기’에도 도전했다.

달리는 사회 만드는 게 꿈

김학윤은 “달리기에서 인생을 배웠다”고 했다. 지나친 경쟁심 때문에 남을 의식해 자기 페이스를 잃을 때나, 기록에 너무 얽매여 자유롭지 못했던 과정 등을 거치면서 변화하는 자신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달리기로 다져진 ‘강철 체력’은 덤으로 주어졌다. 그는 “예전에는 아침 8시에 일어나기도 힘들었고 휴일에는 10~11시에 겨우 일어났는데 달리기에 빠진 이후로는 새벽에 일어나도 전혀 지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환자 한 명 한 명에게 엑스레이를 보여주며 학회에서 발표하듯 자세히 설명하고 상처 부위를 손으로 하나하나 짚어보며 진료한다. 입소문이 퍼지면서 부상한 마라톤 동호회원들이 전국에서 찾아올 정도다.

그의 꿈은 병원을 찾는 모든 환자들이 80~90세까지 건강하게 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김학윤은 “달리는 사람이 많을수록 건강한 사회이며, 잘 달리는 나라가 잘 나가는 국가”라고 말했다.

그가 쉬지 않고 달리는 이유는 또 있다. 1979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뛸 수 없게 된 아버지 때문이다. 의대 진학이라는 아버지의 바람을 이룬 김학윤은 달릴 수 없는 아버지의 자유를 위해 오늘도 마음껏 내달리고 있다.

그는 5월 2일 소아암 환우돕기 서울시민마라톤 대회에 나간다. 그가 총무이사인 사단법인 ‘한국 달리는 의사들’에서 여는 대회로 수익은 소아암 환자에게 기부한다. 대회를 앞둔 그의 소망은 또 있다. 아버지와 손잡고 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