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볼프강 라이츨레 전 BMW사장. 뛰어난 엔지니어이자 경영자였으나 직원들과 대주주 가문에게서 버림을 받은 비운의 인물이다. BMW 퇴사후 Ford사의 Premium Auto Group(PAG: 재규어, 랜드로버, 머큐리/링컨, 아스톤 마틴을 묶은 포드내의 고급브랜드 총괄부서) 총책임자를 거쳐 현재 독일 엔지니어링 회사인 Linde AG 회장으로 지내고 있다.]

3. 라이츨레 그리고 피체스리더
1994년, 당시 46세의 BMW의 베른트 피체스리더 회장은 영국의 Rover그룹 매입을 결정한다. 당시 로버그룹은 로버(Rover),랜드로버(Land Rover)등을 생산하고 있었고 더불어 미니(Mini), 오스틴 힐리(Austin Healey)와 같이 당시 생산되지 않는 클래식한 브랜드명의 권리까지 보유하고 있었다.이리하여 BMW와 로버를 통합한 BMW 그룹의 총생산대수는 100만대를 넘어섰고, 피체스리더 회장은 미니와 랜드로버, 오스틴 힐리등 많은 클래식한 브랜드들을 보유한 로버를 잘 활용하면 BMW그룹이 대형화되어 가는 경쟁사들 사이에서 살아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피체스리더 회장은 1993년 약관 45세의 나이로 회장직에 오른 뛰어난 경영인으로, 라이츨레 박사처럼 독일에서 통상 임원들이 흔히 보유한 ‘박사학위’나 MBA도 없었다. 그는 라이츨레와 뮌헨공대(MTU) 동문으로 기계공학 학사학위를 받고 BMW에서 잠시 1년정도 일하다가 뮌헨의 뛰어난 광고회사를 설립했던 자신의 아버지처럼 자기만의 조그만 업체를 꾸릴려고 했지만 그의 뛰어난 경영 능력을 알아본 BMW가 계속해서 붙잡는 바람에 남아버린 특이한 인물이였다. 회장이 되기 전인 1992년 끊임없이 과한 임금인상등을 요구하는 독일 노동자들에게 지쳐버린 나머지 미국의 사우스 캐롤라이나에 BMW 사상 처음으로 첫 해외공장의 설립을 성공리에 주도했다-그때 그와 함께 미국 전역의 후보지를 같이 탐사한 참모가 현재 BMW 회장인 헬무트 팬케 회장이다. 특이한 것은 영국의 유명한 소형차인 미니를 만든 알렉 이그노시스(Sir Alec Ignossis)경이 자신의 삼촌이라는 것으로 ‘영국광'(Anglophile)이라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영국에 호감을 지니고 있었던 같다.

피체스리더 회장은 시간이 날때마다 회사 곳곳을 돌아다니며 직원들과 대화를 나누는, 상호간의 신뢰를 통한 경영을 추구하고 있었기에 1999년 당시의 피체스리더 회장-라이츨레 사장이라는 BMW의 최고경영진 구성은 비스마르크의 모토처럼 ‘당근과 채찍’과 같은 특이한 존재가 아니였나 한다. 더욱이 회장직이 확실했던 라이츨레 박사가 1990년대 초반에 포르쉐 사장직 수락을 심각하게 고려했었다는 사실이 밝혀져서 피체스리더가 라이츨레를 제치고 회장이 되었기에 적잖은 알력이 존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피체스리더는 로버의 경영 정상화를 너무 낙관적으로 보고 있었으며 건실한 BMW와는 달리 문제 투성이의 로버를 잘못 파악했는지 본사에서 경영진을 직접 파견해서 로버사의 문제를 파악, 장악하지 않고 자율적인 해결에 맡기는 바람에 로버는 인수후에도 점점 부실해져 갔다.

4. BMW 이사회의 내란.
1999년 2월 5일. BMW의 뮌헨 본사의 임원들은 긴장된 분위기에 휩싸였다. 영국의 자회사 로버의 방대한 적자가 발표나자 BMW의 주식 49%를 소유한 콴트(Quandt)가문이 담당자의 문책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이사회가 소집되었으며 피체스리더 회장과 라이츨레 사장등이 참석한 가운데, 5년전 로버의 매입을 추천했던 피체스리더 회장에게 경영부실이란 책임이 지워졌다. 이사회 의결권 절반을 보유한 직원들의 대표기구인 직원 평의회는 피체스리더에게 동정을 느꼈겠지만 나머지 절반을 보유한 임원들은 피체스리더의 문책을 불가피하게 보았다. 결국 피체스리더는 사의를 밝히고 이사회실을 나왔다. 이제 자동적으로 사장인 라이츨레 박사가 회장이 되는 듯 했다. 더욱이 라이츨레는 전부터 로버의 인수에 대해서 반대했었다. BMW회장출신의 이사회 의장인 에베하르트 폰 퀸하임(Eberhard von Kuenheim)을 비롯한 몇몇 임원들은 라이츨레 사장의 회장직 부여를 당연히 생각했고 라이츨레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투표결과는 뜻밖이였다. 직원 평의회가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그동안 BMW에서 철권통치를 휘두르던 ‘채찍’과 같은 존재의 라이츨레가 회장이 될 경우 더 무자비해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던 것이다. 또한 대주주인 콴트가문도 그동안 피체스리더 회장과 끝임없는 반목을 일으키며 독일 언론계에 부정적인 기사감을 제공해주던 라이츨레 사장을 용서할 수 없었다. 콴트가문은 직원 평의회 대표에게 라이츨레의 회장직 승계에 대한 반대를 설득시켰으며, 원래부터 라이츨레에게 감정이 있었던 평의회는 콴트가문과 뜻을 같이 하게 되었다.

이로서 이사회의 표결권은 찬반이 반반으로 갈라져 있는 퀸하임의장의 투표권 하나가 회장 여부를 가르게 되었다. 퀸하임 의장은 전부터 라이츨레에게 회장직을 주겠다고 말했지만 이미 대세는 기울어 졌다. 대주주인 콴트가문, 직원들의 대표기구, 거기다가 사퇴를 한 피체스리더 회장조차 라이츨레의 회장부임에 반대하고 있었다. 결국 퀸하임 의장 조차 반대의견에 굴복, 라이츨레에게 회장직을 부여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결국 라이츨레 또한 몇시간 전의 피체스리더처럼 또한 사의를 표하고 이사회실을 나갔다.

이사회는 큰 혼란에 빠졌다. 회장의 로버사 부실경영에 대한 책임, 회장과 사장간의 알력, 대주주의 요구, 이런 소모적인 분쟁이 회사를 내란수준으로 몰고 갔다. 이러는 가운데 회장과 사장 모두다 불과 몇시간만에 공석이 되어버렸고, 예비후보란 없었다. 불과 몇 시간만의 일이였다.
관계자들은 곧바로 회사의 안정화를 위해 최고경영자 영입에 들어갔고 수십통의 전화가 메르체데스 벤츠의 전직 사장을 비롯해서 포르쉐의 위데킹 사장등에게 갔지만 아무도 긍정적인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기나긴 몇시간동안 모든 묘책을 다쓴 이사회는 궁여지책에 당시 제조부문의 최고책임자인 요아킴 밀버그(Joachim Milberg)를 회장에 추대했다. 교수 출신의 밀버그 박사는 회장을 맡는 것을 주저했으나 회사가 처한 위급한 상황을 알고 있었고 아내와 통화후 회장직을 수락함으로써 BMW의 위기는 일단락 되었다.

이 일이 있은지 얼마 안되어 BMW는 로버그룹중에서 브랜드명이 가장 높은 랜드로버(Land Rover)를 포드사에게 매각하고 소형차인 미니(Mini)브랜드는 계속해서 보유, 개발하기로 했으며, 대신 로버(Rover)사는 영국계 컨서시엄인 Phoenix Consortium에게 상징적인 액수인 10파운드 가량의 ‘푼돈’을 받고 ‘넘겨줬다’. 이렇게 하여 부실한 영국 자동차 그룹은 BMW 최고 경영인 두 명을 앗아가고 BMW에게 기나긴 후유증을 남긴채 공중분해되어 버렸다. 훗날 영국의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지는 로버사에게 당시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영화의 제목인‘The English Patient'(‘영국인 환자’)라는 명칭을 부여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