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 5씨리즈의 변화를 잘 보여주는 사진. 오른쪽에서 두번째 및 세번째가 루테의 지휘하에 만들어 진 자동차들이다. 참고로 맨 오른쪽이 최근형이다. Germancarfans에서 참고]

0. 참고
나비효과(Butterfly Effect): 북경에서 나비 한 마리가 날갯짓을 하면 뉴욕에서는 폭풍이 온다는, 카오스 이론의 비선형성(non-linearity)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비유.

1. 살인자가 된 수석 디자이너
1990년 어느 날, 독일의 한 도시에서 아버지가 아들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되었다. 부자간 살인이라는 다소 의외의 범행으로 끝났을 수도 있었던 이 사건은 다음날 독일 일간지들의 보도들과 함께 관련사와 전세계 자동차 디자인 업계를 뒤흔들었다.
‘BMW 수석 디자이너인 클라우스 루테(Claus Luthe), 아들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

1990년, 클라우스 루테는 BMW 역사상 4번째 수석디자이너로써 회사와 업계에 확고한 입지를 구축하고 있었다. 탄탄하고 야무진 형태의 1986년형 7씨리즈, ‘90년형 3씨리즈와 88’년형 및 ‘95년도의 5씨리즈들이 그의 지휘하에 만들어졌으며, 이 자동차들은 BMW의 팬들과 자동차 전문 언론에게서 BMW를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본격적인 성장궤도로 옮려준 뛰어난 수작들로 평가받았다. 거기다가 루테는 BMW로 옮기기 전에 아우디의 전신인 NSU에서 1980년대에 전세계 자동차 업계의 유선형 디자인 경향을 불러일으킨, 독창적인 Ro80을 디자인함으로써 자신의 뛰어난 재능을 이미 입증한 터였다.

하지만 그에게는 어두운 가족사가 있었으니, 마약중독자인 아들과의 불화가 바로 그것이였다. 그 불화는 계속해서 격화되다가 1990년 그 운명의 날, 난폭하게 집으로 난입한 아들과 아버지간의 대치가 격렬한 몸싸움으로 번졌고, 결국 루테는 아들을 칼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로 경찰에게 구속되었다. 정당방위였을까, 아니면 BMW의 도움이 있었던 걸까. 재판후 감옥에서 복역하였으나 사건을 둘러싼 상황이 매우 비극적이었기에 옥중생활은 그리 길게 하지 않고 출감하였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단순하게 개인적인 사건으로 끝날수 있었던 이 사건은 훗날 BMW의 얼굴을 완전히 바꾸는 시작점으로 기록된다. 북경에서 나비 한 마리의 날갯짓에 비유될 수 있는…

2. 크리스 뱅글의 등장
사건발생 당시 BMW의 디자인을 포함한 R&D(연구개발) 부문의 총책임자는 볼프강 라이츨레(Wolfgang Reitzle) 박사였다. 살인사건으로 공석이 되어버린 수석 디자이너 직은 루테가 성공적으로 지휘한 작품들만큼이나마 대체하기 힘들었으며, 그와 같은 자질의 후보를 찾는 것이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라이츨레 박사가 새로운 후보 물색에 얼마나 고심했는가는 1990년부터 1992년까지 근2년간 BMW의 수석 디자이너 직이 공석이었다는 사실에서 드러난다. 마침내 1992년 10월, BMW는 2년간 공석이였던 수석 디자이너 직책에 미국인인 크리스 뱅글(Chris Bangle)을 선정한다.

명문 디자인 학교로 자동차 디자인에 관해서는 최고의 인맥을 자랑하는 캘리포니아의 아트센터 (Art Center College of Design: ACCD)출신으로 여러 회사들에서 근무하였고 BMW로 가기 전에는 이태리의 피아트 센트로 스타일레(Fiat Centro Stile)의 디렉터로 지내고 있었다. 하지만 뱅글의 디자인 철학은 라이츨레 박사의 경영 스타일과 많이 틀렸기에 이들간의 마찰은 불가피했다.

일단 볼프강 라이츨레는 독일 뮌헨공대에서 기계공학으로 박사학위을, 미국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에서는 경영공학까지 공부했다. 동시에 그는 엘리트주의자로 최고급 옷에 최고급 차에 날씬한 미녀를 동반한 최고급 인생을 즐기는 반면 냉철한 경영인으로 휘하의 부하들에게는 철두철미한 일종의 철권주의자였다.반면에 미대 출신의 크리스 뱅글은 2001년 1월호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지에 실린 “The Ultimate Creativity Machine: How BMW turns Art into Profit.”에서도 썼듯이 디자인실의 독립성 유지를 자신의 최고 목표로 여기고 있었다. 자율성을 중시하는 그였지만 1992년 당시 BMW로 스카웃될 당시 라이츨레 박사는 연구개발 총책임자라는 직위와 함께 회사내 경력으로도 까마득한 상급자였고, 뱅글은 라이츨레 박사 아래에서 기존의 BMW 디자인에서 벗어나는 창조적인 디자인들을 적용할 수는 없었다. 허나 뱅글이 BMW으로 온지 7년만인 1999년,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운명이 수석 디자이너인 루테를 덥쳤듯 당시 사장이 되어 있던 라이츨레 또한 덥치게 되었다.

<계속>